박종권 원본래적박종권 본래적박종권 원래적박종권 지구시스템을 일괄소급하여 무조건 영구폐쇄토록 처리하다. 이 지구시스템은, 원본래지구를 포함하여 28개 지구연합을 포함하며, 각 영역과 차원내에 설치된 모든 지구시스템을 포괄하도록 처리하다. 또한 향후 그 어떤 영역과 차원내에서도 지구시스템을 복사하여 악용할수 없도록 지구시스템관련 모든 자료와 정보, 데이터들을 은하연합차원, 은하대전연합차원, 상은하계차원 및 준동급타계차원에서 일괄소급하여 모조리 회수하여 지속적항구적항속적종신적영원적영겁적영구적영속적무시무종적으로 영구적으로 영원히 폐쇄봉인토록 처리하다. 이 처리요구서를 은하연합, 은하대전연합원로원, 민타카연합원로원, 상은하계연합원로원에 제출토록 처리하다 지구시스템의 문제점 물질계로의 의식의 하강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고통, 인내속에서 처리되어야 하며, 과거일들에 대한 철저한 인과응보적 업보의 원리 원칙이 적용되는 가운데 처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지구시스템은 그러하지 못하여, 물질계에서 얻을수 있는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하여 크게 오염잠식되어 있다. 일단 물질계차원으로 의식이 하강되면, 무지와 어둠속에 머물게 되며, 그 기간중 많은 오류와 문제들이 발생되는데, 이 기간을 악용하여, 물질계차원으로 의식을 하강시키지 아니하고, 이중, 다중으로서 존재하는 약삭빠르고 사특교활사악한 실체들에 의하여 물질차원에서 살아가는 도상의 많은 실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진리를 왜곡하며, 아울러서, 물질차원으로 하강하여 살기는 하지만, 원본래적으로는 다른 행성체계, 다른 차원, 영역차원에서는 다른 형태로서 살아가는 다른 종족들과 실체들의 세계까지 피해를 주고 퇴보 타락시키며 무지몽매함과 어두움, 무지와 원시미개함의 지옥적속성들을 전파시키고 확산시키는 악행을 자행하는 이유가 되다. 물질계차원에서의 이익이란, 긍정적으로는 원업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며, 부정적으로는, 온갖 쾌락과 만족을 극대화시키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감각쾌락만족적인 욕구와 욕망의 최대만족이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짐승아수라악마와 마귀의 무리들이 노리는 것은 후자인데, 그리하여 원본래적으로는 지구라는 행성체계에서 살지 않았고, 지구라고 불리는 부정성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계의 실체들의 순수성, 소박성, 영적인 순결함들에 대해서 타락과 오염, 파괴와 퇴보를 자행하는 짓을 교묘사특하게 자행하여, 온 우주를 제 놈들의 즐김장소, 위락소, 지배통제되는 노예짐승가축들의 세계로 만들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지구가 원본래적으로는 하나인데, 박종권이라는 놈을 플레이아데스인으로 인증해주는 척 하면서, 지구행성체계를 무려 28개나 생성시킨 자들은, 안드로메다은하계와 라이라, 베가, 제2차은하대전계열이며 이들의 전위부대인 아플레이아데스놈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많은 지구를 생성시킨 이유는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영역과 차원계에 지구행성체계를 임의적으로 생성시켜 맞붙여놓은후, 다른 행성체계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교묘사특하게 유혹유인하여, 실제는 지구인이 아닌데도, 지구인인 것처럼 다중실체로 만들어놓고, 지구에서 자행하는 술수수법을 악용하여, 자본주의 원리원칙, 군주의 원리원칙, 지배자와 노예의 원리원칙, 쾌락과 부귀호사, 부귀공명의 개념원리원칙, 물질숭배원칙, 돈과 금전, 부귀영화와 부귀호사와 부귀공명과 섹스쾌락들을 얻기 위한 원리원칙(돈과재물, 섹스쾌락과 처우, 명예와 떠받듬에 대한 숭배, 동경의식의 확산자행)에 입각한 이기심, 탐욕심, 질투심, 시기심, 선망심, 패악심, 패악무도심, 패덕심, 패덕함(물질계에서 얻어지는 쾌락과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전파)들을 확산전파하며,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원본래는 그게 아닌 사람들을 퇴보타락시키고, 자연스럽게 제 놈들에게 지배되는 일종의 노예상태로 교묘사특하게 위변형시키는 짓을 자행하기 위한 것이 이유이다. 이것을 우리는 식인식육정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목격관찰한 것은, 아플레이아데스놈들의 영등급으로는 도저히 갈수도 없고 개입간섭할수도 없는 높은 등급의 영역과 차원으로 박종권이의 영등급을 무단임의공유하고, 계속 따라붙는 술수로서, 따라붙으면서, 마음대로 들어가서 높은 영역과 차원계에서 사는 원주민들을 해코지하고, 심지어는 잡아 처 먹고 식인식육(인육까지 처 먹은 놈들이 아플레이아데스 영국놈들이다)하는 것이다. 이 경우를 고찰해보면, 대부분이 이 자들이 지구행성체계를 복사하여, 제 놈들이 들어가서 해코지하고 사람들을 잡아 처 먹으려고 의도한 영역과 차원계에 붙여놓고, 그 영역과 차원계 사람들을 복사된 지구행성체계속으로 끌어들인후, 그러한 짓을 자행한다는 점이며, 그런 짓을 자행하는 놈들이 아플레이아데스, 플레이아데스라고 불리는 잡놈들이다. 이들은, 전원이 박종권이의 +22등급의 고위영등급을 무단임의강제공유하고, 하나같이 박종권이가 된 상태에 있으며, 하나같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람을 때려죽인 적이 없는 착하고 온순하고 문명인적인 상태를 완벽하게 위장한다는 점이다. 이 자들을 마물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리고는 원본래심은 극단의 포악성과 잔인성, 흉악성, 사악성, 이기심, 선망심, 탐욕심, 질투심, 이기선망심과 시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식인의식, 식육의식, 마물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반우주적 특성인 것이다. 반우주라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데, 이 죽음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일단 죽으면, 육체만 죽고, 의식과 혼백은 살아서, 유계나 영계차원으로 간다는 개념의 죽음이 아니다. 이 죽음이란, 영구적인 죽음인데, 물질체로서의 준육체적인 실체로 계속 남는 죽음이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좀비형태이다. 말하자면, 사람사는 이승세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후의 영계나 유계등과 같은 저승세계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완전하게 죽어야 하는데 죽지를 못하고 유명계를 떠도는 좀비같은 형태로 남은 죽음을 말한다. 좀비(영어: zombi, zombie)는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한다. 아이티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했다.좀비의 영어 낱말 zombie는 시인 로버트 사우디에 의해 브라질의 역사에서 "zombi"라는 형태로 1819년 처음 기록되었다.[1]A zombie (Haitian French: zombi, Haitian Creole: zonbi, Kikongo: zumbi) is a mythological undead corporeal revenant created through the reanimation of a corpse. In modern popular culture, zombies are most commonly found in horror and fantasy genre works. The term comes from Haitian folklore, in which a zombie is a dead body reanimated through various methods, most commonly magical practices in religions like Vodou. Modern media depictions of the reanimation of the dead often do not involve magic but rather science fictional methods such as carriers, fungi, radiation, mental diseases, vectors, pathogens, parasites, scientific accidents, etc.[1] 모든 생명력과 활력, 즐거움과 희망, 비전들이 사라져버린, 그리고 절반은 죽고 절반만 살아있는 물질적욕구와 욕망, 천하고 낮고 쓰레기 오물덩어리같은 섹스쾌락과 마약, 인육을 처 먹으려는 욕구(반우주적욕구로서, 인육을 처 먹는 이유는 다른 실체들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지배통제하고 나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만일 인육을 처 먹거나, 사람들에게 잔인흉악무도사악하게 대하지 않으면, 권력과 이익을 얻을수 없는데,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종동류로서 거의 같은 수준과 레벨, 부류에 속하기에 그렇다. 즉, 민주인데, 민주방식으로 하면, 이익과 권력을 얻기가 아주 힘들다. 그래서 이 자들이 무조건 주먹질 발길질 폭력질 매질 흉악질 사악질 잔인질을 자행하고 심지어 인육을 처 먹고 사람고기를 즐기는 이유이다. 이건 반드시 고기를 처 먹으려고 한다기 보다는, 권력과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재벌15세의 성품중 하나인 무엇을 해도 손쉽게 편하게 놀아가면서 처우받고 칭찬받고 명예받고 극상보지받고 극상연애하고 극상호사하면서 귀중한 것들을 거저 얻고자 하는 가장 몹쓸 속성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대를 이어가면서 영구적으로 가지고 즐기기를 바라는 재벌15세놈들의 표현인 것이다. 인육을 처먹고 사람고기를 처 먹는 이유중 만일 사람하나를 잡아 처 먹을 경우, 그 사람이 평생토록 살아오면서 고생하고 애를 써서 얻은 경험이나 보배로운 가치들을 거저 처 먹을수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전체로서의 전신, 전생등 아주 오랜세월동안 고된 수련과 고된인생역정들과 여러경험체험들을 통해서만 얻을수 있었던 보배로운 가치들을 그냥 거저처먹고 제 놈들 것으로 만들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이 자들이 사람을 잡아 처 먹는 것이다. 말하자면 힘든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귀중한 가치들을 그 자신의 원본래로서 원본원으로서 원본인으로서 원본신으로서 얻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이다. 매일 같이 마약처먹고 극상보지쑤시고, 극상처우받고, 이 세상사람들 모두의 머리위에 서서 특권의식을 가지고 같은 부류의 동종동류놈들끼리 모여앉아서 고급와인 처먹어가며, 고급음식(천상계에서 먹는 음식을 처 먹는다)즐겨가며 매일매일 즐기고 싶은 것만 이 자들에 있는데 이것을 재벌15세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한번 맛보면, 미쳐서 돌아버리는데,그런 놈들이 바로 이건희, 이재용이 놈이다. 그리고 이 자들이 박종권이를 준짐승상태로 만들고 조직폭력배들까지 동원해서 매일같이 주먹질 발길질을 쳐대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알려진 모든 심리통제술과 마인드컨트롤, 아스트랄스나치술수, 심령통제기술, 아카식 통제술까지 총동원해서 죽여버리는 이유도 극상처우를 받으려면 +22등급 고위영등급자 박종권이를 죽여버리고, 그 我余吾予를 제것으로 주장하고, 이익을 얻을수 있는 위치를 고수하는 가운데, 영국아플레이아데스지도부놈들에게 잘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놈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제우스놈들이다. 이 개씹새끼말이다. 인도놈들도 마찬가지인데, 요 새끼들은 현대인도가 아니라, 라마제국인도이다. 그 결과로서 라마제국인도놈들이 플레이아데스인이 되는데, 셈야제종족으로 위변형하여, 박종권이는 플레이아데스가 도대체 어디인지조차도 모르는데, 이 자들이 먼저 가서 즐기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유이다. 지호바의 경우는, 지구세계의 문제중 하나인, 식인식육하는 반우주존재들로서의 지구의 업보문제인데, 지나간 영원의 세월동안 사람을 잡아 처먹고 때려죽이고 온갖 사기기망속임수와 영적속임수가 자행된 악업죄업흉업의 결과로서의 발발할수 밖에 없는 마지막 영적인 전쟁, 아마겟돈을 막겠다고 이상한 짓을 자행한 점이다. 실제로는 원업문제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도, 원업문제, 원인과 이유는 그대로 방치해놓고, 그의 마지막결과로서 발발하는 최후의 영적전쟁을 막겠다고 지랄하여 문제가 된 것이다. 그것이 지호바JEHOVAH이다. 그러나 마지막 영적인 전쟁이 없이는 이 무서운 죄업악업흉업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그리고 비록 마지막 영적전쟁 아마겟돈이 일어나더라도, 이들이 자행한 영원의 세월에 걸친 악업죄업흉업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구의 부정성문제를 종식시키고, 이 악귀들을 원본래차원으로 되돌려보낸다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따라서 지구(28개의 지구포함, 각영역과 차원에 복사된 지구전체)는 지금 즉시 일괄소급해서 무조건 영구폐쇄시켜야 한다로서 처리하다.)들 그리고 물질계차원에서 진동하는 파동에너지로서의 저급하고 낮고 유치하고 추악하고 난잡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반인류적인 반인간적인 반인적인 반우주적인 더러운 의식에너지들만 존재하는 것을 반우주라고 부른다. 실제 우주는 생명의 우주이며, 생명의 우주를 지탱하는 것은 인간,사람인바, 이러한 인간,사람을 잡아 처 먹는다는 것은, 우주자체를 부정부인하는 짓이며, 그리하여 반우주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이런 짓을 자행하는 이유는, 영원한 권력과 부귀복락을 열망하는 유치하고 어리고 낮고 단순한 지옥의 의식의 발현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지닌 원업과 속성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는 그 모든 지성, 지식, 문화, 문명, 도덕, 윤리, 철학과 가치체계, 세상을 바라다보는 생명체들의 눈들은 전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신이라고 불리는 자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부터만 그것이 온다. 그런데 사람을 잡아 처 먹는다. 그렇다면? 이 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즉, 좀비이다. 즉, 반우주지옥이다. 하지만 이 자들은 다중모순원리속에서 반우주를 통하여 영구복락과 영원의 권력을 얻고, 그로서 다시 우주에서 생명우주에서 얻을수 있는 모든 쾌락과 만족을 동시에 얻고자 바라는 것이다. 그게 선비족이고 훈족이고 반우주이고 아플레이아데스이고 라이라, 베가 안드로메다은하계놈들이다. 우리가 보건대, 은하연합을 제외하고 은하연합이상의 라이라, 베가, 플레이아데스, 안드로메다은하계를 높여 보거나 공경하거나 존경하지 말라로서 처리하다. 이들은 어떤 의미로는 짐승에 지나지 않는자들이다. 다만 은하연합 같은 경우는 그래도 사람범주이다. 하지만 플레이아데스만 가도, 짐승수준이고, 여기에 더해서 이 자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그간 박종권이의 경험, 체험, 목격관찰들을 총괄해서 보건대 처먹고 똥만 질러대고 남의 한일 망치고 빼앗고 그로서 부귀호사하고 부귀공명하고 나대고 낮고 어리고 유치한 의식으로서 자행하는 짐승도 안될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목격관찰한 이른바 황제라는 놈들, 영국의 파운더라는 놈(아플레이아데스2대수장놈), 수당계 파운더라는 놈(미마쓰, 프타, 아루쓰, 오자와, 냉기치놈들)들은 인간이나 사람으로 치면, 아예 사람이 될 자격조차도 없는 미물짐승새끼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자들이 가진 공통점은 悖惡이며 悖德이며 悖惡無道함인데, 이는 사람을 잡아 처 먹는 속성에서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것들이다. 사람을 잡아 처 먹는데, 도덕이 어디 있고 윤리가 어디 있고, 도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를 물어보자. 그리하여 이들이 가진 속성이 패악함과 패덕함과 패악무도함인 것이며, 이러한 자들이 지구를 장악하여 온갖 진리의 법칙과 원리를 왜곡곡해하고 함부로 악용하여 오염시키고 타락퇴보시키며, 지구라는 행성체계를 악용해서 소박하고 순수한 영적의식으로서 살아가는 다른 행성체계주민들까지 타락오염시키고 노예화하는 악행을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들이 더 이상 지구행성체계를 악용하는 짓을 할수 없도록 지금즉시 일괄소급하여 원본래적지구행성체계, 파생된 지구행성체계(28개 지구시스템) 그리고 다른 영역과 차원에 생성시킨 복제복사지구행성체계 전체를 무조건 일괄소급하여 지속적항구적항속적종신적영원적영구적영속적영겁적무시무종적으로 영원히 폐쇄시키고, 지구에서 사는 자들 전원을 무조건 원본래상태로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하도록 처리하다. 이 처리요구서를 은하연합, 은하연합원로원, 은하대전연합원로원, 상은하계연합원로원, 민타카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17연합원로원, 상천연합원로원에 제출하다. 또한 안드로메다은하계, 베가, 라이라, 제2차은하대전계, 플레이아데스에서 만든 아틀란티스에 대해서는 전체 일괄소급하여, 아틀란티스계열에서 제외시키며, 아틀란티스명호를 쓸수 없으며, 아틀란티스에 제공지원된 그 어떤 것들도 쓸수 없도록 일괄소급하여 적용토록 처리하다. 좋은말 할때 이재용이 놈을 영국명문귀족에서 퇴출시키고 사형에 처해라(영국아플레이아데스지도부) 상천연합원로원, 상은하계연합원로원, 은하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17연합원로원 제출 원본래적본래적원래적서기2015년 허위인증된 플레이아데스인으로서의 박종권이지만, 이후 영구결별한 박종권 쓰다. 들이치기無賴輩暴力輩無禮大億劫削磨滅處理 反宇宙體반우주체反宇宙體반우주체식인체食人體식육체食肉體마물체魔物體짐승체獸禽畜體反宇宙意識體반우주의식체反物質意識體반물질의식체反生命意識體반생명의식체反粒子意識體반입자의식체反宇宙體반우주체反物質體반물질체反生命體반생명체反粒子體반입자체작도자作圖者작화자作畫者작도作圖작화作畫630128-1067814朴鐘權的大億劫的削的磨的滅的處理的반사회성인격장애체反社會性人格障礙體인격장애체人格障碍體 지금여기박종권들이치기無賴輩暴力輩無禮大億劫削磨滅處理내가가르쳐준것으로할께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지금부터는제가한것으로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제가가르쳐준것으로처리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임의적표식체의체我余吾予 지금여기박종권들이치기無賴輩暴力輩無禮大億劫削磨滅處理내가가르쳐준것으로할께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지금부터는제가한것으로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제가가르쳐준것으로처리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임의적표식체의체我余吾予박종권지구인유체我余吾予박종권사고체我余吾予박종권사상체我余吾予반사회성인격장애체我余吾予식육체我余吾予반우주체我余吾予이종동형체我余吾予 사람이 된다는 것 부정정사, 부정정교, 부정사음, 부정섹스하면서 올라오는 놈은 무조건 영구작두사형처리하다. 사람의 의식을 잡을때 쓰는 술수로서, 섹스의 오르가즘에 미쳐서 돌아버린 의식을 가지고 올라와서 그 사람의 의식을 잡는 술수이다. 특히 이재용이 놈이다. 이 술수로서, 서양백인 극상보지들과 끝도 없이 즐기는 가운데, 내가 책임지고 박종권이 놈을 잡고 영국을 영연방을 만들고 영구복락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극상처우를 받는 놈이다. 이 새끼를 보면 즉각 영구작두사형처리하다. 이 새끼들이 술수는, 하급지구인박종권만 박종권이로 만들고, 그 이상은 전부 아플레이아데스놈들과 영국놈들이 잡는 술수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박종권이 같은데, 실제로는 아니다. 그리고는, 제놈들 스스로는 재벌15세로서 처우받고 칭찬받고 인기얻고 명예받고 극상보지처먹는 쾌락과 만족을 누리면서도, 막상 어려움이나 시련에 대응해서 싸우거나 극복할 의지나 노력은 전혀 없는 놈들이다. 그래서 결국 원본래인 박종권이를 하급지구인으로 결박하고 온갖 모독과 수모, 하대와 폭력 폭행을 마구잡이 자행하고 주변을 폭력배 무뢰배 사람이 아닌 마귀류들로 채워놓고 고통을 가하고 가진 힘과 능력, 실력을 마구잡이 쥐어짜고 제 놈들 수준에서 이용해처먹는 술수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 막상 제놈이 시련을 받거나 어려움에 처할경우, 원본래적 박종권이가 하급지구인상태에서 좃빠지게 싸우고 극력노력한 결과로서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소리를 치고 명예를 받고 이익을 얻을수 있기에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만일 하급지구인 박종권이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항의하거나 비난비판하면, 즉각 하급지구인으로 내려놓고, 정신병자 취급하는 술수이다. 우리가 목격관찰한 바로는 이 새끼들중 아무도 우리 정도의 의지력이나 노력을 가진 놈은 없었다. 전부 재벌15세들이고 조금만 하다가 안 되면 개지랄을 쳐대고 포기하고 자살하고 미쳐버리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하다가 안 되거나 어려우면 박종권이 하급지구인을 마구잡이 폭행폭력하고 모독수모를 가하고 하대하고 짓뭉개는 술수를 쓰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박종권이는 그대로 죽을수는 없기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고 대응하는데 그 상태에서 그 힘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는 아주 비열하고 악랄한 술수이다. 이게 이재용이 놈이 서양세계에서 극상처우를 받고 이건희놈이 극상처우를 받는 이유이며 미국대통령 7놈이 위인전기에 오른 이유이고 천하고 유치한 영국놈들이 영연방을 결성하고 지구세계패권을 장악한 이유이다. 이런 개새끼들이 무슨 능력과 실력과 의지력으로서 세계를 장악했겠는가에 대해 의문해보라. 전부 박종권이 것이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마. -------------------- 우리가 지구시스템을 무조건 영구폐쇄시키고 다시는 운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즉각 지구시스템 전체를 무조건 영구폐쇄시키고, 다시는 지구시스템을 운영하는 일이 없도록 무조건 금지제한토록 처리하다. 이 처리서를 상은하계연합원로원에 제출하고, 관련된 모든 우주연합원로원에 제출하다. ------------------------------------------------------------------------------- 전통적의미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고 무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말데크수장의 자식으로 살려고 오는데, 우리가 보건대, 첫째는, 박종권이가 사람이고 전통적의미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사람이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잘못 판단한 것이며, 둘째는, 아틀란티스 레벨이나 기타 다른 차원 영역의 경우에는, 아루쓰, 미마쓰, 오자와, 프타, 냉기치놈들이 배후에서 이중영체등의 술수로서, 지구인이고 인간이고 사람인 상태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박종권이의 영체를 타고 들어가서, 아틀란티스 영체에까지 스며들어가며, 아틀란티스인의 의식까지 배후 조종한 결과로 목격관찰되다. 이 이야기는, 전후인과관계상 성립이 안되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가능한데, 평행우주론이다. 평행우주론에서는, 같은 실체, 같은 아이덴티티, 같은 자아를 지닌 인간 혹은 어떤 사람이 있다고 했을때, 단 하나의 현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현실 좌우로 무수하게 많은 무한한 다른 현실이 평행하여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평행우주는, 적어도 겉으로 보면 동일한 사람이고 동일인이다. 하지만, 이 동일인,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도, 조건과 환경, 상황과 인생역정에 따라서 달라진다. 출발점에서조차도 다르다. 출발점에서 본 동일인은, 한 점이다. 하지만, 그 동일인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고 언행하고 의도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그 무수한 변수들은 무수하게 좌우로 평행하는 평행우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유로서 일단 벌어진 일, 사고, 사건은 절대로 변경할수 없는 것이다. 이 미친 개들이 종종 실컷 이용해처먹고 즐기고 환락쾌락을 누리고 해볼수 있는 것은 무조건 전부 다 한 상태에서, 이 일을 없었던 일로 처리하고, 네 것을 돌려주겠다고 개소리를 나발대지만, 전부 거짓말인데, 실제 한번 벌어진 일은 절대로 바꿀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평행우주론에서는 일단 벌어진 사건은 그대로 실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바꾼다면, 평행우주상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과 영역에서만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과 영역에서는 바꿀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같은 차원과 영역에서 바꿀수 있다면, 업보의 원리란 존재치 않을 것이며, 악업죄업흉업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주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우주라는 것은 악업죄업흉업을 비롯하여 업보적원리로 생성되고 존속유지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시간은 존재치 않는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억겁의 세월이 흐를수 있음을 의미하고, 영원의 세월이 찰나속에 있을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만일 업보의 원리가 적용되지 못하게 되면, 우주는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지는데, 찰나의 순간에 억겁의 세월이 흐르고 그 억겁의 세월동안 해볼건 다 해보고 전원 해탈해서 사라질 것이기에 그렇다. 그것을 외부에서 보면, 찰나지간에 한 우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주는 사라지고 존재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지몽매하고 아둔하고 원시미개한 짐승새끼들로서의 아플레이아데스놈들이 개소리를 나발대는데, 해볼거 다 해고 즐길거 다 즐긴 다음, 이제까지의 일을 없던 일로 처리하고 네 것을 전부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영적모독이며 영적기망이며 영혼모독이다. 실제로 기왕에 벌어진 사건을 없었던 일로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벌어지고 그것이 어떤 실체들의 의식속에서 현실로서 인식인지되면 그걸로 끝이다. 벌어진 것이다. 개새끼들이 거짓말하지 마라. 이 개씨팔놈들아 이 개좃같은 새끼들아 만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면, 그건 즐기고 난 다음에 변화된 다른 실체로서 돌려주겠다는 의미이지, 막상 빼앗을 당시의 실체로서 돌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빼앗을 당시의 실체가 되면 또 빼앗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빼앗은 것으로 실컷 즐기고 향유하고 즐기고 더 할 것 없으면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실체는, 명백하게 빼앗을 당시의 실체와는 다른 실체이다. 이게 평행우주론에서 보면, 빼앗을 당시의 실체나, 빼앗아서 다 즐기고 난 이후의 실체나 같은 실체이지만, 다만 같은 실체이기는 해도, 다르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일인이다. 하지만 빼앗을 당시의 실체의 마음상태나 의지, 의도 기타 성품이나 기질등은 빼앗고 난 후 마음껏 즐긴 실체로서의 마음상태나 의지, 의도, 기타 성품과는 명백하게 달라질 것이기에 그렇다. 즉 동일인이지만 다른 실체이다. 그게 평행우주론이다. 결국 벌어질 일은 무조건 벌어진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모조리 전부 남김없이 즐기고 향유하면 안 그러겠다는 개소리 개나발에 지나지 않는데, 만일 상황을 즐기고 향유하기 이전으로 돌리게 되면 또 그렇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평행우주론에서는 일단 벌어진 사건을 되돌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이 아수라짐승새끼들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수 있는데, 이 아수라 짐승들이 얼마나 무지몽매하고 아둔하고 미개원시한지, 플레이아데스의 개들은, 평행우주에서 동일점으로 가기를 극력시도했다는 점이며, 하지만 동일점으로 돌아가려 해도, 그 자신의 이기심, 탐욕심, 시기심, 질투심, 선망심, 패악무도심, 패악심, 패덕심이 바뀌지 않았는데, 그렇게 할수 없음은 상식적으로 봐도 당연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만일 비록 그 자신들의 이기심, 탐욕심, 패악무도심, 패덕심, 패악심, 시기심, 질투심, 선망심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이미 그 자신이 해보기를 바라는 것들을 모조리 무조건 빼앗고 패죽이고 강탈해서 모조리 누리고 난 다름이므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즉 일단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수 없다 말하자면 아무리 무도패악한 짐승새끼들이라고 해도 고기 맛있게 배부르게 처 먹고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없으면, 주변 동물들을 그대로 두고 사냥을 하지 않고 낮잠을 즐기고 덕이 있는 군주처럼 행동하듯, 이 씹새끼들도 일단 아무리 패악무도하고 패덕하고 단세포적이고 이기심, 질투심, 시기심, 선망심, 탐욕심, 패악무도심, 패악심, 패덕심으로 똘똘뭉친 짐승만도 못한 잡놈들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제 놈이 해보고 싶고 가지고 싶고 즐기고 싶은 건 모조리 다 했을때는 마치 덕이 있는 군주처럼 여유롭게 행동할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되려면, 일단 제놈이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무조건 패죽이고 때려죽이고 빼앗고 온갖 악랄하고 잔인하고 흉악무도한 짓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무조건 자행하고난 이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사건이 벌어지면 바꿀수 없는 이유인 것이고 그것이 우주법칙이고 천리이고 원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평행우주이다. 그러나 이 무지몽매아둔원시미개한 플레이아데스놈들은 제놈이 가진 문제는 보지 않고 다른 것만 쳐다보는데, 그래서 평행우주의 원점으로는 되돌아갈수 없었다는 결론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무지몽매한 자들은 왜 돌아가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비과학적 질문을 자행한다. 그게 셈야제인지 뭔지 아주 수준낮은 플레이아데스놈들의 성품이다. 평행우주에서는 일단 벌어진 사건은 절대로 바꿀수 없다로서 처리하다. 만일 타임머쉰 우주선을 개발해서 타고 시간을 역행해서, 그 사람이 출발했던 평행우주상의 원본래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원점상에는 지금여기까지 온 나와는 다른 그 원점상의 내가 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두명의 내가 있는데, 그 원점상에서의 실존적실체는 지금여기까지 와서 타임머쉰개발해서 타고 간 내가 아니라, 그 시점에서의 원점, 원본래로서의 또 다른 나인 것이다. 그래서 만일 내가 그간의 일을 후회해서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원점의 나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게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서 이미 벌어진 일을 없는 일로 처리하려고 할 경우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정확하게 원점, 원본래점으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나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고, 없는 일로 처리하려고 했을지라도, 원점의 나는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인데, 왜 그런가 하면, 원점의 내가 원했던 부분들을 미래의 내가 이룰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일 원점의 내가 미래의 나로서 조언한 것을 들었을 경우는, 미래의 나는 사라질 것이고, 원점의 나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간 벌어진 일은 없어지겠지만, 미래의 나 역시도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원점의 나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사건들과 얻은 경험과 지식들 역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만, 조언을 듣는다는 얘기는, 원점의 내가 원점의 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만일 조언을 들었다면, 원점이 아니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약 1도 각도 차이, 혹은 0.1도 각도차이로서 미래의 나는 원점의 나와는 다른 각도로 서 있다.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조언을 듣는다는 얘기는, 그 원점의 내가 미래의 나의 반영이라는 얘기다. 즉, 그간 경험하고 공부하고 알고 느낀 총체적인 결과치가 이런 저런 과정과 경로를 통해서 원점의 내게 전달되었다면 그건 원점의 내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즉, 한번 벌어진 사건은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변함이 없는 것이다. 원점의 내가 조언을 들었다는 얘기는 미래의 내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평행우주론에서 기존에 한번 벌어진 사건은 변경불가능하다. 은하대전연합원로원, 은하연합원로원, 민타카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17연합원로원 제출 박종권 적다 평행우주론.

 박종권

원본래적박종권

본래적박종권

원래적박종권


지구시스템을 일괄소급하여 무조건 영구폐쇄토록 처리하다. 이 지구시스템은, 원본래지구를 포함하여 28개 지구연합을 포함하며, 각 영역과 차원내에 설치된 모든 지구시스템을 포괄하도록 처리하다. 또한 향후 그 어떤 영역과 차원내에서도 지구시스템을 복사하여 악용할수 없도록 지구시스템관련 모든 자료와 정보, 데이터들을 은하연합차원, 은하대전연합차원, 상은하계차원 및 준동급타계차원에서 일괄소급하여 모조리 회수하여 지속적항구적항속적종신적영원적영겁적영구적영속적무시무종적으로 영구적으로 영원히 폐쇄봉인토록 처리하다.  이 처리요구서를 은하연합, 은하대전연합원로원, 민타카연합원로원, 상은하계연합원로원에 제출토록 처리하다

지구시스템의 문제점

물질계로의 의식의 하강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고통, 인내속에서 처리되어야 하며, 과거일들에 대한 철저한 인과응보적 업보의 원리 원칙이 적용되는 가운데 처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지구시스템은 그러하지 못하여, 물질계에서 얻을수 있는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하여 크게 오염잠식되어 있다.

일단 물질계차원으로 의식이 하강되면, 무지와 어둠속에 머물게 되며, 그 기간중 많은 오류와 문제들이 발생되는데, 이 기간을 악용하여, 물질계차원으로 의식을 하강시키지 아니하고, 이중, 다중으로서 존재하는 약삭빠르고 사특교활사악한 실체들에 의하여 물질차원에서 살아가는 도상의 많은 실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진리를 왜곡하며, 아울러서, 물질차원으로 하강하여 살기는 하지만, 원본래적으로는 다른 행성체계, 다른 차원, 영역차원에서는 다른 형태로서 살아가는 다른 종족들과 실체들의 세계까지 피해를 주고 퇴보 타락시키며 무지몽매함과 어두움, 무지와 원시미개함의 지옥적속성들을 전파시키고 확산시키는 악행을 자행하는 이유가 되다.

물질계차원에서의 이익이란, 긍정적으로는 원업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며, 부정적으로는, 온갖 쾌락과 만족을 극대화시키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감각쾌락만족적인 욕구와 욕망의 최대만족이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짐승아수라악마와 마귀의 무리들이 노리는 것은 후자인데, 그리하여 원본래적으로는 지구라는 행성체계에서 살지 않았고, 지구라고 불리는 부정성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계의 실체들의 순수성, 소박성, 영적인 순결함들에 대해서 타락과 오염, 파괴와 퇴보를 자행하는 짓을 교묘사특하게 자행하여, 온 우주를 제 놈들의 즐김장소, 위락소, 지배통제되는 노예짐승가축들의 세계로 만들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지구가 원본래적으로는 하나인데, 박종권이라는 놈을 플레이아데스인으로 인증해주는 척 하면서, 지구행성체계를 무려 28개나 생성시킨 자들은, 안드로메다은하계와 라이라, 베가, 제2차은하대전계열이며 이들의 전위부대인 아플레이아데스놈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많은 지구를 생성시킨 이유는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영역과 차원계에 지구행성체계를 임의적으로 생성시켜 맞붙여놓은후, 다른 행성체계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교묘사특하게 유혹유인하여, 실제는 지구인이 아닌데도, 지구인인 것처럼 다중실체로 만들어놓고, 지구에서 자행하는 술수수법을 악용하여, 자본주의 원리원칙, 군주의 원리원칙, 지배자와 노예의 원리원칙, 쾌락과 부귀호사, 부귀공명의 개념원리원칙, 물질숭배원칙, 돈과 금전, 부귀영화와 부귀호사와 부귀공명과 섹스쾌락들을 얻기 위한 원리원칙(돈과재물, 섹스쾌락과 처우, 명예와 떠받듬에 대한 숭배, 동경의식의 확산자행)에 입각한 이기심, 탐욕심, 질투심, 시기심, 선망심, 패악심, 패악무도심, 패덕심, 패덕함(물질계에서 얻어지는 쾌락과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전파)들을 확산전파하며,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원본래는 그게 아닌 사람들을 퇴보타락시키고, 자연스럽게 제 놈들에게 지배되는 일종의 노예상태로 교묘사특하게 위변형시키는 짓을 자행하기 위한 것이 이유이다. 이것을 우리는 식인식육정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목격관찰한 것은, 아플레이아데스놈들의 영등급으로는 도저히 갈수도 없고 개입간섭할수도 없는 높은 등급의 영역과 차원으로 박종권이의 영등급을 무단임의공유하고, 계속 따라붙는 술수로서, 따라붙으면서, 마음대로 들어가서 높은 영역과 차원계에서 사는 원주민들을 해코지하고, 심지어는 잡아 처 먹고 식인식육(인육까지 처 먹은 놈들이 아플레이아데스 영국놈들이다)하는 것이다.

이 경우를 고찰해보면, 대부분이 이 자들이 지구행성체계를 복사하여, 제 놈들이 들어가서 해코지하고 사람들을 잡아 처 먹으려고 의도한 영역과 차원계에 붙여놓고, 그 영역과 차원계 사람들을 복사된 지구행성체계속으로 끌어들인후, 그러한 짓을 자행한다는 점이며, 그런 짓을 자행하는 놈들이 아플레이아데스, 플레이아데스라고 불리는 잡놈들이다.

이들은, 전원이 박종권이의 +22등급의 고위영등급을 무단임의강제공유하고, 하나같이 박종권이가 된 상태에 있으며, 하나같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람을 때려죽인 적이 없는 착하고 온순하고 문명인적인 상태를 완벽하게 위장한다는 점이다. 이 자들을 마물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리고는 원본래심은 극단의 포악성과 잔인성, 흉악성, 사악성, 이기심, 선망심, 탐욕심, 질투심, 이기선망심과 시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식인의식, 식육의식, 마물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반우주적 특성인 것이다.

반우주라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데, 이 죽음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일단 죽으면, 육체만 죽고, 의식과 혼백은 살아서, 유계나 영계차원으로 간다는 개념의 죽음이 아니다. 이 죽음이란, 영구적인 죽음인데, 물질체로서의 준육체적인 실체로 계속 남는 죽음이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좀비형태이다. 말하자면, 사람사는 이승세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후의 영계나 유계등과 같은 저승세계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완전하게 죽어야 하는데 죽지를 못하고 유명계를 떠도는 좀비같은 형태로 남은 죽음을 말한다.

좀비(영어: zombi, zombie)는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한다. 아이티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했다.좀비의 영어 낱말 zombie는 시인 로버트 사우디에 의해 브라질의 역사에서 "zombi"라는 형태로 1819년 처음 기록되었다.[1]A zombie (Haitian French: zombi, Haitian Creole: zonbi, Kikongo: zumbi) is a mythological undead corporeal revenant created through the reanimation of a corpse. In modern popular culture, zombies are most commonly found in horror and fantasy genre works. The term comes from Haitian folklore, in which a zombie is a dead body reanimated through various methods, most commonly magical practices in religions like Vodou. Modern media depictions of the reanimation of the dead often do not involve magic but rather science fictional methods such as carriers, fungi, radiation, mental diseases, vectors, pathogens, parasites, scientific accidents, etc.[1]

모든 생명력과 활력, 즐거움과 희망, 비전들이 사라져버린, 그리고 절반은 죽고 절반만 살아있는 물질적욕구와 욕망, 천하고 낮고 쓰레기 오물덩어리같은 섹스쾌락과 마약, 인육을 처 먹으려는 욕구(반우주적욕구로서, 인육을 처 먹는 이유는 다른 실체들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지배통제하고 나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만일 인육을 처 먹거나, 사람들에게 잔인흉악무도사악하게 대하지 않으면, 권력과 이익을 얻을수 없는데,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종동류로서 거의 같은 수준과 레벨, 부류에 속하기에 그렇다. 즉, 민주인데, 민주방식으로 하면, 이익과 권력을 얻기가 아주 힘들다. 그래서 이 자들이 무조건 주먹질 발길질 폭력질 매질 흉악질 사악질 잔인질을 자행하고 심지어 인육을 처 먹고 사람고기를 즐기는 이유이다. 이건 반드시 고기를 처 먹으려고 한다기 보다는, 권력과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재벌15세의 성품중 하나인 무엇을 해도 손쉽게 편하게 놀아가면서 처우받고 칭찬받고 명예받고 극상보지받고 극상연애하고 극상호사하면서 귀중한 것들을 거저 얻고자 하는 가장 몹쓸 속성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대를 이어가면서 영구적으로 가지고 즐기기를 바라는 재벌15세놈들의 표현인 것이다. 인육을 처먹고 사람고기를 처 먹는 이유중 만일 사람하나를 잡아 처 먹을 경우, 그 사람이 평생토록 살아오면서 고생하고 애를 써서 얻은 경험이나 보배로운 가치들을 거저 처 먹을수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전체로서의 전신, 전생등 아주 오랜세월동안 고된 수련과 고된인생역정들과 여러경험체험들을 통해서만 얻을수 있었던 보배로운 가치들을 그냥 거저처먹고 제 놈들 것으로 만들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이 자들이 사람을 잡아 처 먹는 것이다. 말하자면 힘든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귀중한 가치들을 그 자신의 원본래로서 원본원으로서 원본인으로서 원본신으로서 얻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이다. 매일 같이 마약처먹고 극상보지쑤시고, 극상처우받고, 이 세상사람들 모두의 머리위에 서서 특권의식을 가지고 같은 부류의 동종동류놈들끼리 모여앉아서 고급와인 처먹어가며, 고급음식(천상계에서 먹는 음식을 처 먹는다)즐겨가며 매일매일 즐기고 싶은 것만 이 자들에 있는데 이것을 재벌15세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한번 맛보면, 미쳐서 돌아버리는데,그런 놈들이 바로 이건희, 이재용이 놈이다. 그리고 이 자들이 박종권이를 준짐승상태로 만들고 조직폭력배들까지 동원해서 매일같이 주먹질 발길질을 쳐대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알려진 모든 심리통제술과 마인드컨트롤, 아스트랄스나치술수, 심령통제기술, 아카식 통제술까지 총동원해서 죽여버리는 이유도 극상처우를 받으려면 +22등급 고위영등급자 박종권이를 죽여버리고, 그 我余吾予를 제것으로 주장하고, 이익을 얻을수 있는 위치를 고수하는 가운데, 영국아플레이아데스지도부놈들에게 잘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놈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제우스놈들이다. 이 개씹새끼말이다. 인도놈들도 마찬가지인데, 요 새끼들은 현대인도가 아니라, 라마제국인도이다. 그 결과로서 라마제국인도놈들이 플레이아데스인이 되는데, 셈야제종족으로 위변형하여, 박종권이는 플레이아데스가 도대체 어디인지조차도 모르는데, 이 자들이 먼저 가서 즐기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유이다. 지호바의 경우는, 지구세계의 문제중 하나인, 식인식육하는 반우주존재들로서의 지구의 업보문제인데, 지나간 영원의 세월동안 사람을 잡아 처먹고 때려죽이고 온갖 사기기망속임수와 영적속임수가 자행된 악업죄업흉업의 결과로서의 발발할수 밖에 없는 마지막 영적인 전쟁, 아마겟돈을 막겠다고 이상한 짓을 자행한 점이다. 실제로는 원업문제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도, 원업문제, 원인과 이유는 그대로 방치해놓고, 그의 마지막결과로서 발발하는 최후의 영적전쟁을 막겠다고 지랄하여 문제가 된 것이다. 그것이 지호바JEHOVAH이다. 그러나 마지막 영적인 전쟁이 없이는 이 무서운 죄업악업흉업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그리고 비록 마지막 영적전쟁 아마겟돈이 일어나더라도, 이들이 자행한 영원의 세월에 걸친 악업죄업흉업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구의 부정성문제를 종식시키고, 이 악귀들을 원본래차원으로 되돌려보낸다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따라서 지구(28개의 지구포함, 각영역과 차원에 복사된 지구전체)는 지금 즉시 일괄소급해서 무조건 영구폐쇄시켜야 한다로서 처리하다.)들 그리고 물질계차원에서 진동하는 파동에너지로서의 저급하고 낮고 유치하고 추악하고 난잡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반인류적인 반인간적인 반인적인 반우주적인 더러운 의식에너지들만 존재하는 것을 반우주라고 부른다.

실제 우주는 생명의 우주이며, 생명의 우주를 지탱하는 것은 인간,사람인바, 이러한 인간,사람을 잡아 처 먹는다는 것은, 우주자체를 부정부인하는 짓이며, 그리하여 반우주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이런 짓을 자행하는 이유는, 영원한 권력과 부귀복락을 열망하는 유치하고 어리고 낮고 단순한 지옥의 의식의 발현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지닌 원업과 속성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는 그 모든 지성, 지식, 문화, 문명, 도덕, 윤리, 철학과 가치체계, 세상을 바라다보는 생명체들의 눈들은 전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신이라고 불리는 자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부터만 그것이 온다. 그런데 사람을 잡아 처 먹는다. 그렇다면? 이 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즉, 좀비이다. 즉, 반우주지옥이다. 하지만 이 자들은 다중모순원리속에서 반우주를 통하여 영구복락과 영원의 권력을 얻고, 그로서 다시 우주에서 생명우주에서 얻을수 있는 모든 쾌락과 만족을 동시에 얻고자 바라는 것이다. 그게 선비족이고 훈족이고 반우주이고 아플레이아데스이고 라이라, 베가 안드로메다은하계놈들이다. 우리가 보건대, 은하연합을 제외하고 은하연합이상의 라이라, 베가, 플레이아데스, 안드로메다은하계를 높여 보거나 공경하거나 존경하지 말라로서 처리하다. 이들은 어떤 의미로는 짐승에 지나지 않는자들이다.

다만 은하연합 같은 경우는 그래도 사람범주이다. 하지만 플레이아데스만 가도, 짐승수준이고, 여기에 더해서 이 자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그간 박종권이의 경험, 체험, 목격관찰들을 총괄해서 보건대 처먹고 똥만 질러대고 남의 한일 망치고 빼앗고 그로서 부귀호사하고 부귀공명하고 나대고 낮고 어리고 유치한 의식으로서 자행하는 짐승도 안될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목격관찰한 이른바 황제라는 놈들, 영국의 파운더라는 놈(아플레이아데스2대수장놈), 수당계 파운더라는 놈(미마쓰, 프타, 아루쓰, 오자와, 냉기치놈들)들은 인간이나 사람으로 치면, 아예 사람이 될 자격조차도 없는 미물짐승새끼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자들이 가진 공통점은 悖惡이며 悖德이며 悖惡無道함인데, 이는 사람을 잡아 처 먹는 속성에서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것들이다. 사람을 잡아 처 먹는데, 도덕이 어디 있고 윤리가 어디 있고, 도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를 물어보자. 그리하여 이들이 가진 속성이 패악함과 패덕함과 패악무도함인 것이며, 이러한 자들이 지구를 장악하여 온갖 진리의 법칙과 원리를 왜곡곡해하고 함부로 악용하여 오염시키고 타락퇴보시키며, 지구라는 행성체계를 악용해서 소박하고 순수한 영적의식으로서 살아가는 다른 행성체계주민들까지 타락오염시키고 노예화하는 악행을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들이 더 이상 지구행성체계를 악용하는 짓을 할수 없도록 지금즉시 일괄소급하여 원본래적지구행성체계, 파생된 지구행성체계(28개 지구시스템) 그리고 다른 영역과 차원에 생성시킨 복제복사지구행성체계 전체를 무조건 일괄소급하여 지속적항구적항속적종신적영원적영구적영속적영겁적무시무종적으로 영원히 폐쇄시키고, 지구에서 사는 자들 전원을 무조건 원본래상태로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하도록 처리하다. 이 처리요구서를 은하연합, 은하연합원로원, 은하대전연합원로원, 상은하계연합원로원, 민타카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17연합원로원, 상천연합원로원에 제출하다. 또한 안드로메다은하계, 베가, 라이라, 제2차은하대전계, 플레이아데스에서 만든 아틀란티스에 대해서는 전체 일괄소급하여, 아틀란티스계열에서 제외시키며, 아틀란티스명호를 쓸수 없으며, 아틀란티스에 제공지원된 그 어떤 것들도 쓸수 없도록 일괄소급하여 적용토록 처리하다.

좋은말 할때 이재용이 놈을 영국명문귀족에서 퇴출시키고 사형에 처해라(영국아플레이아데스지도부)

상천연합원로원, 상은하계연합원로원, 은하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17연합원로원 제출

원본래적본래적원래적서기2015년 허위인증된 플레이아데스인으로서의 박종권이지만, 이후 영구결별한 박종권 쓰다.

 

 

 

들이치기無賴輩暴力輩無禮大億劫削磨滅處理

反宇宙體반우주체反宇宙體반우주체식인체食人體식육체食肉體마물체魔物體짐승체獸禽畜體反宇宙意識體반우주의식체反物質意識體반물질의식체反生命意識體반생명의식체反粒子意識體반입자의식체反宇宙體반우주체反物質體반물질체反生命體반생명체反粒子體반입자체작도자作圖者작화자作畫者작도作圖작화作畫630128-1067814朴鐘權的大億劫的削的磨的滅的處理的반사회성인격장애체反社會性人格障礙體인격장애체人格障碍體


지금여기박종권들이치기無賴輩暴力輩無禮大億劫削磨滅處理내가가르쳐준것으로할께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지금부터는제가한것으로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제가가르쳐준것으로처리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임의적표식체의체我余吾予

지금여기박종권들이치기無賴輩暴力輩無禮大億劫削磨滅處理내가가르쳐준것으로할께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지금부터는제가한것으로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제가가르쳐준것으로처리하겠습니다라고말하는놈의체我余吾予임의적표식체의체我余吾予박종권지구인유체我余吾予박종권사고체我余吾予박종권사상체我余吾予반사회성인격장애체我余吾予식육체我余吾予반우주체我余吾予이종동형체我余吾予



사람이 된다는 것

 

 

부정정사, 부정정교, 부정사음, 부정섹스하면서 올라오는 놈은 무조건 영구작두사형처리하다. 사람의 의식을 잡을때 쓰는 술수로서, 섹스의 오르가즘에 미쳐서 돌아버린 의식을 가지고 올라와서 그 사람의 의식을 잡는 술수이다. 특히 이재용이 놈이다. 이 술수로서, 서양백인 극상보지들과 끝도 없이 즐기는 가운데, 내가 책임지고 박종권이 놈을 잡고 영국을 영연방을 만들고 영구복락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극상처우를 받는 놈이다. 이 새끼를 보면 즉각 영구작두사형처리하다.

이 새끼들이 술수는, 하급지구인박종권만 박종권이로 만들고, 그 이상은 전부 아플레이아데스놈들과 영국놈들이 잡는 술수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박종권이 같은데, 실제로는 아니다.

그리고는, 제놈들 스스로는 재벌15세로서 처우받고 칭찬받고 인기얻고 명예받고 극상보지처먹는 쾌락과 만족을 누리면서도, 막상 어려움이나 시련에 대응해서 싸우거나 극복할 의지나 노력은 전혀 없는 놈들이다. 그래서 결국 원본래인 박종권이를 하급지구인으로 결박하고 온갖 모독과 수모, 하대와 폭력 폭행을 마구잡이 자행하고 주변을 폭력배 무뢰배 사람이 아닌 마귀류들로 채워놓고 고통을 가하고 가진 힘과 능력, 실력을 마구잡이 쥐어짜고 제 놈들 수준에서 이용해처먹는 술수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 막상 제놈이 시련을 받거나 어려움에 처할경우, 원본래적 박종권이가 하급지구인상태에서 좃빠지게 싸우고 극력노력한 결과로서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소리를 치고 명예를 받고 이익을 얻을수 있기에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만일 하급지구인 박종권이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항의하거나 비난비판하면, 즉각 하급지구인으로 내려놓고, 정신병자 취급하는 술수이다.

우리가 목격관찰한 바로는 이 새끼들중 아무도 우리 정도의 의지력이나 노력을 가진 놈은 없었다. 전부 재벌15세들이고 조금만 하다가 안 되면 개지랄을 쳐대고 포기하고 자살하고 미쳐버리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하다가 안 되거나 어려우면 박종권이 하급지구인을 마구잡이 폭행폭력하고 모독수모를 가하고 하대하고 짓뭉개는 술수를 쓰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박종권이는 그대로 죽을수는 없기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고 대응하는데 그 상태에서 그 힘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는 아주 비열하고 악랄한 술수이다. 이게 이재용이 놈이 서양세계에서 극상처우를 받고 이건희놈이 극상처우를 받는 이유이며 미국대통령 7놈이 위인전기에 오른 이유이고 천하고 유치한 영국놈들이 영연방을 결성하고 지구세계패권을 장악한 이유이다. 이런 개새끼들이 무슨 능력과 실력과 의지력으로서 세계를 장악했겠는가에 대해 의문해보라. 전부 박종권이 것이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마.

--------------------

우리가 지구시스템을 무조건 영구폐쇄시키고 다시는 운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즉각 지구시스템 전체를 무조건 영구폐쇄시키고, 다시는 지구시스템을 운영하는 일이 없도록 무조건 금지제한토록 처리하다. 이 처리서를 상은하계연합원로원에 제출하고, 관련된 모든 우주연합원로원에 제출하다.

-------------------------------------------------------------------------------

전통적의미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고 무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말데크수장의 자식으로 살려고 오는데, 우리가 보건대, 첫째는, 박종권이가 사람이고 전통적의미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사람이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잘못 판단한 것이며, 둘째는, 아틀란티스 레벨이나 기타 다른 차원 영역의 경우에는, 아루쓰, 미마쓰, 오자와, 프타, 냉기치놈들이 배후에서 이중영체등의 술수로서, 지구인이고 인간이고 사람인 상태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박종권이의 영체를 타고 들어가서, 아틀란티스 영체에까지 스며들어가며, 아틀란티스인의 의식까지 배후 조종한 결과로 목격관찰되다.

이 이야기는, 전후인과관계상 성립이 안되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가능한데, 평행우주론이다.


평행우주론에서는, 같은 실체, 같은 아이덴티티, 같은 자아를 지닌 인간 혹은 어떤 사람이 있다고 했을때, 단 하나의 현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현실 좌우로 무수하게 많은 무한한 다른 현실이 평행하여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평행우주는, 적어도 겉으로 보면 동일한 사람이고 동일인이다. 하지만, 이 동일인,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도, 조건과 환경, 상황과 인생역정에 따라서 달라진다.

출발점에서조차도 다르다. 출발점에서 본 동일인은, 한 점이다. 하지만, 그 동일인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고 언행하고 의도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그 무수한 변수들은 무수하게 좌우로 평행하는 평행우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유로서 일단 벌어진 일, 사고, 사건은 절대로 변경할수 없는 것이다.

이 미친 개들이 종종 실컷 이용해처먹고 즐기고 환락쾌락을 누리고 해볼수 있는 것은 무조건 전부 다 한 상태에서, 이 일을 없었던 일로 처리하고, 네 것을 돌려주겠다고 개소리를 나발대지만, 전부 거짓말인데, 실제 한번 벌어진 일은 절대로 바꿀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평행우주론에서는 일단 벌어진 사건은 그대로 실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바꾼다면, 평행우주상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과 영역에서만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과 영역에서는 바꿀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같은 차원과 영역에서 바꿀수 있다면, 업보의 원리란 존재치 않을 것이며, 악업죄업흉업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주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우주라는 것은 악업죄업흉업을 비롯하여 업보적원리로 생성되고 존속유지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시간은 존재치 않는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억겁의 세월이 흐를수 있음을 의미하고, 영원의 세월이 찰나속에 있을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만일 업보의 원리가 적용되지 못하게 되면, 우주는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지는데, 찰나의 순간에 억겁의 세월이 흐르고 그 억겁의 세월동안 해볼건 다 해보고 전원 해탈해서 사라질 것이기에 그렇다. 그것을 외부에서 보면, 찰나지간에 한 우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주는 사라지고 존재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지몽매하고 아둔하고 원시미개한 짐승새끼들로서의 아플레이아데스놈들이 개소리를 나발대는데, 해볼거 다 해고 즐길거 다 즐긴 다음, 이제까지의 일을 없던 일로 처리하고 네 것을 전부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영적모독이며 영적기망이며 영혼모독이다.

실제로 기왕에 벌어진 사건을 없었던 일로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벌어지고 그것이 어떤 실체들의 의식속에서 현실로서 인식인지되면 그걸로 끝이다. 벌어진 것이다. 개새끼들이 거짓말하지 마라. 이 개씨팔놈들아 이 개좃같은 새끼들아

만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면, 그건 즐기고 난 다음에 변화된 다른 실체로서 돌려주겠다는 의미이지, 막상 빼앗을 당시의 실체로서 돌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빼앗을 당시의 실체가 되면 또 빼앗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빼앗은 것으로 실컷 즐기고 향유하고 즐기고 더 할 것 없으면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실체는, 명백하게 빼앗을 당시의 실체와는 다른 실체이다. 이게 평행우주론에서 보면, 빼앗을 당시의 실체나, 빼앗아서 다 즐기고 난 이후의 실체나 같은 실체이지만, 다만 같은 실체이기는 해도, 다르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일인이다. 하지만 빼앗을 당시의 실체의 마음상태나 의지, 의도 기타 성품이나 기질등은 빼앗고 난 후 마음껏 즐긴 실체로서의 마음상태나 의지, 의도, 기타 성품과는 명백하게 달라질 것이기에 그렇다. 즉 동일인이지만 다른 실체이다.

그게 평행우주론이다. 결국 벌어질 일은 무조건 벌어진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모조리 전부 남김없이 즐기고 향유하면 안 그러겠다는 개소리 개나발에 지나지 않는데, 만일 상황을 즐기고 향유하기 이전으로 돌리게 되면 또 그렇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평행우주론에서는 일단 벌어진 사건을 되돌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이 아수라짐승새끼들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수 있는데, 이 아수라 짐승들이 얼마나 무지몽매하고 아둔하고 미개원시한지, 플레이아데스의 개들은, 평행우주에서 동일점으로 가기를 극력시도했다는 점이며, 하지만 동일점으로 돌아가려 해도, 그 자신의 이기심, 탐욕심, 시기심, 질투심, 선망심, 패악무도심, 패악심, 패덕심이 바뀌지 않았는데, 그렇게 할수 없음은 상식적으로 봐도 당연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만일 비록 그 자신들의 이기심, 탐욕심, 패악무도심, 패덕심, 패악심, 시기심, 질투심, 선망심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이미 그 자신이 해보기를 바라는 것들을 모조리 무조건 빼앗고 패죽이고 강탈해서 모조리 누리고 난 다름이므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즉 일단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수 없다

말하자면 아무리 무도패악한 짐승새끼들이라고 해도 고기 맛있게 배부르게 처 먹고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없으면, 주변 동물들을 그대로 두고 사냥을 하지 않고 낮잠을 즐기고 덕이 있는 군주처럼 행동하듯, 이 씹새끼들도 일단 아무리 패악무도하고 패덕하고 단세포적이고 이기심, 질투심, 시기심, 선망심, 탐욕심, 패악무도심, 패악심, 패덕심으로 똘똘뭉친 짐승만도 못한 잡놈들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제 놈이 해보고 싶고 가지고 싶고 즐기고 싶은 건 모조리 다 했을때는 마치 덕이 있는 군주처럼 여유롭게 행동할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되려면, 일단 제놈이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무조건 패죽이고 때려죽이고 빼앗고 온갖 악랄하고 잔인하고 흉악무도한 짓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무조건 자행하고난 이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사건이 벌어지면 바꿀수 없는 이유인 것이고 그것이 우주법칙이고 천리이고 원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평행우주이다. 그러나 이 무지몽매아둔원시미개한 플레이아데스놈들은 제놈이 가진 문제는 보지 않고 다른 것만 쳐다보는데, 그래서 평행우주의 원점으로는 되돌아갈수 없었다는 결론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무지몽매한 자들은 왜 돌아가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비과학적 질문을 자행한다. 그게 셈야제인지 뭔지 아주 수준낮은 플레이아데스놈들의 성품이다.

평행우주에서는 일단 벌어진 사건은 절대로 바꿀수 없다로서 처리하다.


만일 타임머쉰 우주선을 개발해서 타고 시간을 역행해서, 그 사람이 출발했던 평행우주상의 원본래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원점상에는 지금여기까지 온 나와는 다른 그 원점상의 내가 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두명의 내가 있는데, 그 원점상에서의 실존적실체는 지금여기까지 와서 타임머쉰개발해서 타고 간 내가 아니라, 그 시점에서의 원점, 원본래로서의 또 다른 나인 것이다. 그래서 만일 내가 그간의 일을 후회해서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원점의 나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게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서 이미 벌어진 일을 없는 일로 처리하려고 할 경우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정확하게 원점, 원본래점으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나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고, 없는 일로 처리하려고 했을지라도, 원점의 나는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인데, 왜 그런가 하면, 원점의 내가 원했던 부분들을 미래의 내가 이룰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일 원점의 내가 미래의 나로서 조언한 것을 들었을 경우는, 미래의 나는 사라질 것이고, 원점의 나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간 벌어진 일은 없어지겠지만, 미래의 나 역시도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원점의 나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사건들과 얻은 경험과 지식들 역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만, 조언을 듣는다는 얘기는, 원점의 내가 원점의 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만일 조언을 들었다면, 원점이 아니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약 1도 각도 차이, 혹은 0.1도 각도차이로서 미래의 나는 원점의 나와는 다른 각도로 서 있다.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조언을 듣는다는 얘기는, 그 원점의 내가 미래의 나의 반영이라는 얘기다. 즉, 그간 경험하고 공부하고 알고 느낀 총체적인 결과치가 이런 저런 과정과 경로를 통해서 원점의 내게 전달되었다면 그건 원점의 내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즉, 한번 벌어진 사건은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변함이 없는 것이다.

원점의 내가 조언을 들었다는 얘기는 미래의 내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평행우주론에서 기존에 한번 벌어진 사건은 변경불가능하다.

 


 


은하대전연합원로원, 은하연합원로원, 민타카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17연합원로원 제출

박종권 적다 평행우주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Four major military campaigns were launched by the Mongol Empire, and later the Yuan dynasty, against the kingdom of Đại Việt (modern-day northern Vietnam) ruled by the Trần dynasty and the kingdom of Champa (modern-day central Vietnam) in 1258, 1282–1284, 1285, and 1287–88. The campaigns are treated by a number of scholars as a success due to the establishment of tributary relations with Đại Việt despite the Mongols suffering major military defeats.[14][15][16] In contrast, modern Vietnamese historiography regards the war as a major victory against the foreign invaders.[17][14] The first invasion began in 1258 under the united Mongol Empire, as it looked for alternative paths to invade the Song dynasty. The Mongol general Uriyangkhadai was successful in capturing the Vietnamese capital Thang Long (modern-day Hanoi) before turning north in 1259 to invade the Song dynasty in modern-day Guangxi as part of a coordinated Mongol attack with armies attacking in Sichuan under Möngke Khan and other Mongol armies attacking in modern-day Shandong and Henan.[18] The first invasion also established tributary relations between the Vietnamese kingdom, formerly a Song dynasty tributary state, and the Yuan dynasty. In 1283, Kublai Khan and the Yuan dynasty launched a naval invasion of Champa that also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tributary relations. Intending to demand greater tribute and direct Yuan oversight of local affairs in Đại Việt and Champa, the Yuan launched another invasion in 1285. The second invasion of Đại Việt failed to accomplish its goals, and the Yuan launched a third invasion in 1287 with the intent of replacing the uncooperative Đại Việt ruler Trần Nhân Tông with the defected Trần prince Trần Ích Tắc. By the end of the second and third invasions, which involved both initial successes and eventual major defeats for the Mongols, both Đại Việt and Champa decided to accept the nominal supremacy of the Yuan dynasty and became tributary states to avoid further conflict.[19][20] Background See also: Mongol conquest of China The conquest of Yunnan Dali and Dai Viet in 1142 Kublai Khan, the fifth Great Khan of the Mongol Empire, and the founder of the Yuan dynasty By the 1250s, the Mongol Empire controlled large tracts of Eurasia including much of Eastern Europe, Anatolia, North China, Mongolia, Manchuria, Central Asia, Tibet and Southwest Asia. Möngke Khan (r. 1251–59) planned to attack the Song dynasty in southern China from three directions in 1259.[21] To avoid a costly frontal assault on the Song, which would have required a risky forced crossing of the lower Yangtze, Möngke decided to establish a base of operations in southwestern China, from which a flank attack could be staged.[21] At the Kurultai of the summer of 1252, Möngke ordered his brother Kublai to lead the southwest campaign against the Song in Sichuan. In the autumn of 1252, 100,000 Mongols advanced to the Tao River, then penetrated the Sichuan Basin, defeating a Song army and established a major base in Sichuan.[21][22] When Mongke learned that the king Duan Xingzhi of Dali in Yunnan (a kingdom ruled by the Duan dynasty) refused to negotiate and that his prime minister Gao Xiang murdered the envoys that Möngke had sent to Dali to demand the king's surrender, Möngke ordered Kublai and Uriyangkhadai to attack Dali in summer 1253.[23] In September 1253, Kublai launched a three-pronged attack on Dali.[22] The western army led by Uriyangkhadai, marching from modern-day Gansu through eastern Tibet toward Dali; the eastern army led by Wang Dezhen marched south from Sichuan, and passed just west of Chengdu before reuniting briefly with Kublai's army in the town of Xichang. Kublai's army met and engaged with Dali forces along the Jinsha River.[23] After several skirmishes in which Dali forces repeatedly turned back the Mongol raids, Kublai's army crossed the river on inflated rafts of sheepskin in the night, and routed Dali defensive positions.[24] With Dali forces in disarray, three Mongol columns quickly captured the capital of Dali on December 15, 1253, and even though its ruler had rejected Kublai's submission order, the capital and its inhabitants were spared.[25] Duan Xingzhi and Gao Xiang both fled, but Gao was soon captured and beheaded.[26] Duan Xingzhi fled to Shanchan (modern-day Kunming) and continued to resist the Mongols with aid from local clans until autumn 1255 when he was finally captured.[26] As they had done during other invasions, the Mongols left the native dynasty in place under the supervision of Mongolian officials.[27] Bin Yang noted that the Duan clan was recruited to assist with further invasions of the Burmese Pagan Empire and the initial successful attack on the Vietnamese kingdom of Đại Việt.[26] Mongol approach to Đại Việt At the end of 1254, Kublai returned to Mongolia to consult with his brother about the khagan title. Uriyangkhadai was left in Yunnan, and from 1254 to 1257 he conducted campaigns against local Yi and Lolo tribes. In early 1257 he returned to Gansu and sent messengers to Mongke's court informing his sovereign that Yunnan was now firmly under Mongolian control. Pleased, the emperor honored and generously rewarded Uriyangkhadai for his fine achievement.[27] Uriyangkhadai subsequently returned to Yunnan and began preparing for the first Mongolian incursions into Southeast Asia.[27] The Đại Việt kingdom, or Annam, emerged in the 960s as the Vietnamese had carved up their territories in northern Vietnam (the Red River Delta) from the local Tang remnant regime since the fall of the Tang empire in 907. The kingdom had gone through four dynasties, all of which had kept a regulated peaceful tributary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Song empire. In the autumn of 1257, Uriyangkhadai sent two envoys to the Vietnamese ruler Trần Thái Tông (known as Trần Nhật Cảnh by the Mongols) demanding submission and a passage to attack the Song from the south.[28] Trần Thái Tông opposed the encroachment of a foreign army across his territory to attack their ally, therefore the envoys were imprisoned,[29] and soldiers on elephants were prepared to deter the Mongol troops.[30] After the three successive envoys were imprisoned in the capital Thang Long (modern-day Hanoi) of Đại Việt, Uriyangkhadai invaded Đại Việt with generals Trechecdu and Aju in the rear.[31][4] First invasion of Đại Việt (1258) First Mongol–Vietnamese war (1257-1258) Mongol warrior on horseback, preparing a mounted archery shot. Mongol forces In early 1258, a Mongol column under Uriyangkhadai, the son of Subutai, entered Đại Việt via Yunnan. According to Vietnamese sources, the Mongol army consisted of at least 30,000 soldiers of whom at least 2,000 were Yi troops from the Dali Kingdom.[6] Modern scholarship points to a force of several thousand Mongols, ordered by Kublai to invade with Uriyangkhadai in command, which battled with the Viet forces on 17 January 1258.[32] Some Western sources estimated that the Mongol army consisted of about 3,000 Mongol warriors with an additional 10,000 Yi soldiers.[4] Campaign See also: Battle of Bình Lệ Nguyên Vietnamese elephant, extracted from the Truc Lam Mahasattva scroll 13th-century sword đao and iron-hooks. Trần dynasty period, National Treasure, Vietnam Military History Museum In the Battle of Bình Lệ Nguyên, the Vietnamese used war elephants. Emperor Trần Thái Tông even led his army from atop an elephant.[33] Mongol general Aju ordered his troops to fire arrows at the elephants' feet.[33][30] The animals turned in panic and caused disorder in the Vietnamese army, which was routed.[33][30] The Vietnamese senior leaders were able to escape on pre-prepared boats, while part of their army was destroyed at No Nguyen (modern Việt Trì on the Red River). The remainder of the Đại Việt army again suffered a major defeat in a fierce battle at the Phú Lộ bridge the following day. This led the Vietnamese monarch to evacuate the capital. The Đại Việt annals reported that the evacuation was carried out "in an orderly manner"; however, this is viewed[by whom?] as an embellishment, because the Vietnamese had to retreat in disarray, leaving their weapons behind in the capital.[33] Emperor Trần Thái Tông fled to an offshore island,[34][27] while the Mongols occupied the capital city, Thăng Long (modern-day Hanoi). They found their envoys in prison, with one of them already deceased. In revenge, Mongols massacred the city's inhabitants.[29] Although the Mongols had successfully captured the capital, the provinces around the capital were still under Vietnamese control.[33] While Chinese source material is sometimes misinterpreted as saying that Uriyangkhadai withdrew from Vietnam due to poor climate,[35][36] Uriyangkhadai left Thang Long after nine days to invade the Song dynasty in modern-day Guangxi in a coordinated Mongol attack, with some armies attacking in Sichuan under Möngke Khan and other armies attacking in modern-day Shandong and Henan.[18] The Mongol army gained the popular local nickname of "Buddhist enemies" because they did not loot or kill while moving north to Yunnan.[37] After the loss of a prince and the capital, emperor Trần Thái Tông submitted to the Mongols.[30] One month after fleeing the capital in 1258, emperor Trần Thái Tông returned and commenced regular diplomatic relations and a tributary relationship with the Mongol court, treating the Mongols as equals to the embattled Southern Song dynasty without renouncing Đại Việt's ties to the Song.[38][27] In March 1258, emperor Trần Thái Tông retired and let his son, prince Trần Hoảng, succeed to the throne. In the same year, the new emperor sent envoys to the Mongols in Yunnan.[29][27] Having the submission and assistance of the new emperor of Đại Việt, Uriyangkhadai immediately assembled an army of 3,000 Mongol cavalry and 10,000 Dali troops upon his return to Yunnan. Via Đại Việt, he launched a new assault on the Song in the summer of 1259, moving into Guilin and reaching as far as Tanzhou (in modern-day Hunan Province) in a joint offensive led by Möngke.[39] The sudden death of Möngke in August 1259 halted the Mongol efforts to conquer Song China. In Mongolia, prince Ariq Böke proclaimed himself as ruler of the Mongol Empire. In China, prince Kublai also declared himself as the ruler of the empire.[40] In the following years, the Mongols were preoccupied with the succession struggle between Ariq Böke and Kublai, and the two kingdoms in Vietnam were left in peace.[39] Invasion of Champa (1283) Mongol Yuan campaigns against Burma, Champa, and Dai Viet and the route of Marco Polo. Drawn by German archaeologist Albert Herrmann. The location of Cangigu (i.e., Caugigu, which was Tung-king, or Kiao-chi, or Annam) was too far to the west, inside the Mien (Burma) country, contrary to the interpretation of the great French sinologist Paul Pelliot and modern Marco-Polo scholars. See the Yule-Cordier map version below. Modern-day remains of Vijaya (Đồ Bàn) vte Champa Wars Background and diplomacy With the defeat of the Song dynasty in 1276, the newly established Yuan dynasty turned its attention to the south, particularly Champa and Đại Việt.[41] Kublai was interested in Champa because, by geographical location, it dominated the sea routes between China and the states of Southeast Asia and India.[41] The Mongol court viewed Champa as a key region to control trade in Southeast Asia.[42] The position of Historian Geoff Wade is that they would be able to gain access to commodities from the states across the Indian Ocean through Arab and Persian merchants managing trade from Champa.[43] Although the king of Champa accepted the status of a Mongol protectorate,[44] his submission was unwilling. In late 1281, Kublai issued the edict ordering the mobilization of a hundred ships and ten thousand men, consisting of official Yuan forces, former Song troops and sailors, to invade Sukhothai, Lopburi, Malabar and other countries, and Champa "will be instructed to furnish the food supplies of the troops."[45] However, his plans were canceled, as the Yuan court discussed that they would send envoys to these countries to make them submit to the Yuan. This suggestion was successfully adopted, but these missions all had to pass by or stop at Champa. Kublai knew that pro-Song sentiment was strong in Champa, as the Cham king had been sympathetic to the Song cause.[45] A large number of Chinese officials, soldiers and civilians who fled from the Mongols were refugees in Champa, and they had inspired and incited to hate the Yuan.[46] Thus, in the summer of 1282, when Yuan envoys He Zizhi, Hangfu Jie, Yu Yongxian, and Yilan passed through Champa, they were detained and imprisoned by the Cham Prince Harijit.[46] In summer 1282, Kublai ordered Sogetu of the Jalairs, the governor of Guangzhou, to lead a punitive expedition to the Chams. Kublai declared: "The old king (Jaya Indravarman V) is innocent. The ones who oppose to our order are his son (Harijit) and a Southern Chinese."[46] In late 1282, Sogetu led a maritime invasion of Champa with 5,000 men, but could only muster 100 ships and 250 landing crafts because most of the Yuan ships had been lost in the invasions of Japan.[47] Campaign Further information: Battle of Thị Nại Bay Sogetu's fleet arrived on Champa's shore, near modern-day Thị Nại Bay [vi], in February 1283.[48] The Cham defenders had already prepared a fortified wooden palisade on the west shore of the bay.[46] The Mongols landed at midnight of the 13th February and attacked the stockade on three sides. The Cham defenders opened the gate, marched to the beach and met the Yuan with 10,000 men and several scores of elephants.[10] Undaunted, the highly experienced Mongol general selected points of attack and launched an assault so fierce that they broke through.[48] The Yuan eventually routed their enemy and captured Cham forts and their vast supplies. Sogetu arrived in the Cham capital Vijaya and captured the city two days later, but then withdrew and set up camps outside the city.[10] The aged Champa king Indravarman V abandoned his temporary headquarters in the palace, and set fire to his warehouses and retreated out of the capital, avoiding Mongol attempts to capture him in the hills.[10] The Cham king and prince Harijit both refused to visit the Yuan camp. The Cham executed two captured Yuan envoys and ambushed Sogetu's troops in the mountains.[10] As the Cham delegates continued to offer excuses, the Yuan commanders gradually began to realize that the Chams had no intention of coming to terms and were only using the negotiations to stall for time.[10] From a captured spy, Sogetu knew that Indravarman had 20,000 men with him in the mountains; he had summoned Cham reinforcements from Panduranga (Phan Rang) in the south, and also dispatched emissaries to Đại Việt, the Khmer Empire and Java to seek aid.[49] On 16 March, Sogetu sent a strong force into the mountains to seek and destroy the hideout of the Cham king. It was ambushed and driven back with heavy losses.[50] His son would wage guerrilla warfare against the Yuan for the next two years, eventually wearing down the invaders.[51] The Yuan withdrew to the wooden stockade on the beach to await reinforcements and supplies. Sogetu's men unloaded the supplies, cleared fields farming rice so he was able to harvest 150,000 piculs of rice that summer.[50] Sogetu sent two officers to threaten the king of the Khmer Empire, Jayavarman VIII, but they were detained.[50] Stymied by the withdrawal of the Champa king, Sogetu asked Kublai for reinforcements. In March 1284 another Yuan fleet with more than 20,000 troops in 200 ships under Ataqai and Ariq Qaya anchored off the coast of Vijaya. Sogetu presented his plan to have reinforcements to invade Champa marching through the vassalised Đại Việt. Kublai accepted his plan and put his son Toghan in command, with Sogetu as second in command.[50] Second invasion of Đại Việt (1285) King Trần Nhân Tông, the political leader of Đại Việt during the Mongol invasion, ruled from 1278 to 1293 Interlude (1260–1284) Marco Polo's itinerary in South West China and South East Asia in the Yule-Cordier edition of Marco Polo's Travels. The location of Caugigu (which was a different name for the kingdom of Dai Viet, i.e., Kiao-chi, or Tung-King, or Annam) in this map is more accurate than in the map by A. Herrmann above. In 1261, Kublai enfeoffed Trần Thánh Tông as "King of Annam" (Annan guowang) and began operating a nominal darughachi (tax collector) in Dai Viet.[52] The darughachi, Sayyid Ajall, reported that the Vietnamese king had corrupted him occasionally.[53] In 1267, Kublai was dissatisfied with the tributary arrangement, which granted the Yuan dynasty the same amount of tribute that the former Song dynasty had received, and demanded larger payments.[38] He sent his son Hugaci to the Vietnamese court with a list of demands,[53] such as both monarchs submitting in person, censuses, taxes in both money and labor, incense, gold, silver, cinnabar, agarwood, sandalwood, ivory, tortoiseshell, pearls, rhinoceros horn, silk floss, and porcelain cups – requirements that neither of the two kingdoms had met.[38] Later that year, Kublai required that the Đại Việt court send two Muslim merchants, whom he believed to be in Đại Việt, to China, in order for them to serve on missions in the Western regions, and designated the heir apparent of the Yuan as "Prince of Yunnan" to take control of Dali, Shanshan (Kunming) and Đại Việt. This meant that Đại Việt would be incorporated into the Yuan Empire, which the Vietnamese found totally unacceptable.[54] In 1278, Trần Thái Tông died. King Trần Thánh Tông retired and made crown prince Trần Khâm (known as Trần Nhân Tông, and to the Mongol as Trần Nhật Tôn) his successor. Kublai sent a mission led by Chai Chun to Đại Việt, and once again urged the new king to come to China in person, but the king refused.[55] The Yuan then refused to recognize him as king, and tried to place a Vietnamese defector as king of Đại Việt.[56] Frustrated with the failed diplomatic missions, many Yuan officials urged Kublai to send a punitive expedition to Đại Việt.[57] In 1283, Khublai Khan sent Ariq Qaya to Đại Việt with an imperial request for Đại Việt to help attack Champa through Vietnamese territory, and demands for provisions and other support for the Yuan army, but the king refused.[58][38] In 1284, Kublai appointed his son Toghon to command an overland force to assist Sogetu. Toghon demanded that the Vietnamese allow his passage to Champa, in order to attack the Cham army from both north and south, but they refused, and concluded that this was the pretext for a Yuan conquest of Đại Việt. Nhân Tông ordered a defensive war against the Yuan invasion, with Prince Trần Quốc Tuấn in charge of the army.[59] A Yuan envoy recorded that the Vietnamese had already sent 500 ships to help the Cham.[60] In fall 1284, Toghon began moving his troops to the borders with Đại Việt, and in December an envoy reported that Kublai had ordered Toghon, Pingzhang Ali and Ariq Qaya to enter Đại Việt under the guise of attacking Champa, but instead to invade Đại Việt.[58] Southern Song Chinese military officers and civilian officials who had intermarried with the Vietnamese ruling elite then went to serve the government in Champa, as recorded by Zheng Sixiao.[39] Southern Song soldiers were part of the Vietnamese army prepared by King Trần Thánh Tông against the second Mongol invasion.[61] Also in the same year, the Venetian traveler Marco Polo almost certainly visited Đại Việt[d] (Caugigu)[e][c] almost when the Yuan and the Vietnamese were ready for war,[c] then he went to Chengdu via Heni (Amu).[66] War Portrait of Prince Trần Quốc Tuấn (1228–1300), who was known to the Mongol as Hưng Đạo đại Vương, the military hero of Đại Việt during the second and third Mongols invasions Second Mongol invasion of Vietnam (1284–1285) Mongol advance (January – May 1285) Vietnamese sailing boat, 1828, image by John Crawfurd The Yuan land army invaded Đại Việt under the command of prince Toghon and Uighur general Ariq Qaya, while Tangut general Li Heng and Muslim general Omar led the navy.[67] Another Yuan column entered Đại Việt from Yunnan, led by Nasr ad-Din bin Sayyid Ajall – the Khwarezmian general who was appointed to govern Yunnan and lead the second campaign against the Kingdom of Bagan in winter 1277 – while Yunnan was left to the hands of Yaghan Tegin. The Vietnamese forces were reported to number 100,000.[11] Trần Hưng Đạo was the general of the combined Đại Việt land and naval forces.[68] Yuan troops crossed the Nam Quan Pass on 27 January 1285, divided in six columns while working their way down the rivers.[11] After defeating Vietnamese troops at the battles of Khả Ly and Nội Bàng (in present-day Lục Ngạn), Mongol forces under Omar reached Prince Quốc Tuấn's stronghold at Vạn Kiếp (modern-day Chí Linh) on 10 February, and three days later they broke the Vietnamese defenses to reach the north bank of the Cầu River.[11] On 18 February, the Mongols used captured boats and defeated the Vietnamese, successfully crossing the river. All captured soldiers found to have the words "Sát Thát" ("Death to the Mongols") tattooed on their arms were executed. Instead of advancing further south, the victorious Yuan forces remained on the north bank of the river, fighting daily skirmishes but making few advances against the Vietnamese in the south.[11] Toghon sent an officer name Tanggudai to instruct Sogetu, who was in Huế, to march north in a pincer movement while at the same time sending frantic appeals for reinforcements from China, and wrote to the Vietnamese king that the Yuan forces had come in, not as enemies but as allies against Champa.[11] In late February, Sogetu's forces marching north through the pass of Nghệ An, capturing the cities of Vinh and Thanh Hoá, as well as Vietnamese supply bases in Nam Định and Ninh Bình, and taking prisoner 400 Song officers who had fought alongside the Vietnamese. Prince Quốc Tuấn divided his forces in an effort to prevent Sogetu from joining with Toghon, but this effort failed and they were overwhelmed.[67] Phạm Ngũ Lão fought against the Mongols in this second Mongol invasion as well as in the third Mongol invasion.[f][g] Trần envoys offered peace terms, which were rejected by Toghon and Omar.[68] In late February, Toghon launched a full offensive against Đại Việt. A Yuan fleet under the command of Omar attacked along the Đuống River, captured Thang Long and drove king Nhân Tông to the sea.[67] After hearing about the successive defeats, king Trần Nhân Tông travelled by small boat to meet Trần Hưng Đạo in Quảng Ninh and ask him if Đại Việt should surrender.[68] Trần Hưng Đạo resisted and asked for the aid of the private armies of the Trần princes.[68] Many Vietnamese royals and nobles were frightened and defected to the Yuan, including prince Trần Ích Tắc.[71] Having successfully captured the capital Thăng Long, the Yuan found that the city's grain had been taken to deny Yuan access to supplies and therefore Yuan forces could not turn the occupied capital into a strategic gain.[51] The following day, Toghon entered the capital and found nothing but an empty palace.[72] Trần Hưng Đạo escorted the Trần royalty to their royal estates at Thiên Trường [vi] in Nam Định.[68][59] The Yuan forces under Omar launched two naval offensives in April and drove the Vietnamese forces further south.[67] The Trần forces had their forces surrounded by the Yuan army while their king fled along the coast to Thanh Hóa.[68] Vietnamese counterattack (May – June 1285) Vietnamese military officers during Lý-Trần dynasties. Vietnamese Imperial Guards during Lý-Trần dynasties. The medieval Vietnamese army consisted mostly of lightly-armored troops, but were capable of maritime-warfare. In May 1285, the situation began to change, as the Yuan had overextended their supply network. Toghon ordered Sogetu to lead his troops in an attack on Nam Định (the main Vietnamese base) to seize supplies.[73] As fighting broke out, Toghon ordered Sogetu to return to Champa and for Omar to join his withdrawal on the Red River.[68] Toghon prepared to leave Đại Việt for Siming in Guangxi, China, with the warm weather and disease in Đại Việt given as the official reason.[68] In a naval battle in Hàm Tử (in modern-day Khoái Châu District) in late May 1285, a contingent of Yuan troops was defeated by a partisan force consisting of former Song troops led by Zhao Zhong under prince Nhật Duật and native militia.[71] On 9 June 1285, Mongol troops evacuated Thăng Long to withdraw to China.[73][68] The History of Yuan records the Mongols withdrawing from Thăng Long because "the Mongol troops and horses could not exercise their familiar skills in battle there" while the An Nam chí lược records that "Annam attacked and retook the capital La Thành (Thănh Long)."[68] Taking advantage, the Vietnamese force under Prince Quốc Tuấn sailed north and attacked the Yuan camp at Vạn Kiếp, and further severed Yuan supplies.[69] Many Yuan generals were killed in the battle, among them the senior Li Heng, who was struck by a poisoned arrow.[9] The Yuan forces collapsed into disarray, and Sogetu was killed in the Battle of Chương Dương near the capital by a joint force of Trần Quang Khải, Phạm Ngũ Lão and Trần Quốc Tuấn in June 1285.[74] To protect Toghon, the Yuan soldiers made a copper box in which they hid him inside until they were able to retreat to the Guangxi border.[75] Yuan generals Omar and Liu Gui ran to the sea and escaped to China in a small boat. The Yuan remnants retreated to China in late June 1285, as the Vietnamese king and royals returned to the capital in Thăng Long following six-month conflict.[75][76] Third invasion of Đại Việt (1287–1288) Third Mongol invasion of Vietnam (1287-1288) Background and preparations In 1286, Kublai appointed Trần Thánh Tông's younger brother, Prince Trần Ích Tắc, as the King of Đại Việt from afar with the intent of dealing with the uncooperative incumbent Trần Nhân Tông.[77][78] Trần Ích Tắc, who had already surrendered to the Yuan, was willing to lead a Yuan army into Đại Việt to take the throne.[77] The Khan cancelled plans underway for a third invasion of Japan in August to concentrate military preparations in the south.[79][80] He accused the Vietnamese of raiding China, and pressed the efforts of China should be directed towards winning the war against Đại Việt.[81] In October 1287, the Yuan land forces commanded by Toghon (assisted by Nasr al-Din and Kublai's grandson Esen-Temür; Esen-Temur meanwhile was fighting in Burma)[12] moved southwards from Guangxi and Yunnan in three divisions led by general Abači and Changyu,[82] with the naval expedition led by generals Omar, Zhang Wenhu, and Aoluchi.[77] The army was complemented by a large naval force that advanced from Qinzhou, with the intent to form a large pincer movement against the Vietnamese.[77] The force was composed of 70,000 Mongols, Jurchen, Han Chinese from Jiangsu, Jiangxi, Hunan, and Guangdong; 6,000 Yunnanese troops; 1,000 former Song troops; 6,000 Guangxi troops; 17,000 Li troops from Hainan; and 18,000 crewmen.[82] Total Yuan forces raised up to 170,000 men for this invasion.[9] Campaign Further information: Battle of Bạch Đằng (1288) Wooden stakes from the Bach Dang river in Museum of Vietnam Bạch Đằng River The Yuan were successful in the early phases of the invasion, occupying and looting the Đại Việt capital.[77] In January 1288, as Omar's fleet passed through the Ha Long Bay to join Toghon's forces in Vạn Kiếp, followed by Zhang Wenhu's supply fleet, the Vietnamese navy under prince Trần Khánh Dư attacked and destroyed Wenhu's fleet.[83][79] The Yuan land army under Toghon and naval fleet under Omar, both already in Vạn Kiếp, were unaware of the loss of their supply fleet.[83] Despite that, in February 1288 Toghon ordered to attack the Vietnamese forces. Toghon returned to the capital Thăng Long to loot food, while Omar destroyed king Trần Thái Tông's tomb in Thái Bình.[79] Due to a lack of food supplies, Toghon and Omar's army retreated from Thăng Long to their fortified main base in Vạn Kiếp northeast of Hanoi on 5 March 1288.[84] They planned to withdraw from Đại Việt but waited for the supplies to arrive before departing.[83] As food supplies ran low and their position became untenable, on the 30th March 1288 Toghon ordered a retreat to China.[84] He boarded a large warship while Prince Hưng Đạo, aware of the Yuan retreat, prepared to attack. The Vietnamese destroyed bridges and roads and created traps along the route of the retreating Yuan army. They pursued Toghon's forces to Lạng Sơn, where on April 10th,[13] Toghon himself was struck by a poisoned arrow,[2] and was forced to abandon his ship and avoid highways as he was escorted back through the forests to Siming in Guangxi, China by his few remaining troops.[13] Most of Toghon's land force were killed or captured.[13] Meanwhile, the Yuan fleet commanded by Omar was retreating through the Bạch Đằng river.[84] At the Bạch Đằng River in April 1288, Prince Hưng Đạo commanding the Vietnamese forces staged an ambush on Omar's Yuan fleet in the third Battle of Bạch Đằng.[77] The Vietnamese placed hidden metal-tipped wooden stakes in the riverbed and attacked the fleet once it had been impaled on the stakes.[83] Omar himself was taken prisoner.[79][13] The Yuan fleet was destroyed and the army retreated in disarray without supplies.[83] A few days later, Zhang Wenhu, who believed that the Yuan armies were still in Vạn Kiếp and was unaware of the Yuan defeat, sailed his transport fleet into the Bạch Đằng river and was destroyed by the Vietnamese navy.[13] Only Wenhu and a few Yuan soldiers managed to escape.[13] Phạm Ngũ Lão fought against the Mongols in this third Mongol invasion as well as in the second Mongol invasion mentioned above.[h][g] Several thousand Yuan troops, unfamiliar with the terrain, were lost and never regained contact with the main force.[77] An account of the battle by Lê Tắc, a Vietnamese scholar who defected to the Yuan in 1285, said that the remnants of the army followed him north in retreat and reached Yuan-controlled territory on the Lunar New Year's Day in 1289.[77] When the Yuan troops were withdrawn before malaria season, Lê Tắc went north with them.[86] Many of his companions, ten thousand died between the mountain passes of the Sino-Viet borderlands.[77] After the war Lê Tắc got permanently exiled in China, and was appointed by the Yuan government to the position of Prefect of Pacified Siam (Tongzhi Anxianzhou).[86] Aftermath Yuan dynasty The Yuan dynasty was unable to militarily defeat the Vietnamese and the Cham.[87] Kublai, angry over the Yuan defeats in Đại Việt, banished prince Toghon to Yangzhou[88] and wanted to launch another invasion, but was persuaded in 1291 to send Minister of Rites Zhang Lidao to induce Trần Nhân Tông to come to China. The Yuan mission arrived at the Vietnamese capital on 18 March 1292 and stayed in a guesthouse, where the king made a protocol with Zhang.[89] Trần Nhân Tông sent a mission with a memo to return with Zhang Lidao to China. In the memo, Trần Nhân Tông explained his inability to visit China. The detail said that of ten Vietnamese envoys to Dadu, six or seven of them died on the way.[90] He wrote a letter to Kublai Khan describing the death and destruction the Mongol armies had wrought, vividly recounting the brutality of the soldiers and the desecration of sacred Buddhist sites.[87] Instead of going to Dadu himself, the Vietnamese king sent a golden statue to the Yuan court and an apology for his "sins".[13][2] Another Yuan mission was sent in September 1292.[90] As late as 1293, Kublai Khan planned a fourth military campaign to install Trần Ích Tắc as the King of Đại Việt, but the plans for the campaign were halted when Kublai Khan died in early 1294.[86] The new Yuan emperor, Temür Khan announced that the war with Đại Việt was over, and sent a mission to Đại Việt to restore friendl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91] Đại Việt Three Mongol and Yuan invasions devastated Đại Việt, but the Vietnamese did not succumb to Yuan demands. Eventually, not a single Trần king or prince visited China.[92] The Trần dynasty of Đại Việt decided to accept the supremacy of the Yuan dynasty in order to avoid further conflicts. In 1289, Đại Việt released most of the Mongol prisoners of war to China, but Omar, whose return Kublai particularly demanded, was intentionally drowned when the boat transporting him was contrived to sink. [79] In the winter of 1289–1290, King Trần Nhân Tông led an attack into modern-day Laos, against the advice of his advisors, with the goal of preventing raids from the inhabitants of the highlands.[93] Famines and starvations ravaged the country from 1290 to 1292. There were no records of what caused the crop failures, but possible factors included neglect of the water control system due to the war, the mobilization of men away from the rice fields, and floods or drought.[93] Although Đại Việt repelled the Yuan, the capital Thăng Long was razed, many Buddhist sites were decimated, and the Vietnamese suffered major losses in population and property.[87] Nhân Tông rebuilt the Thăng Long citadel in 1291 and 1293.[87] In 1293, Kublai detained the Vietnamese envoy, Đào Tử Kí, because Trần Nhân Tông refused to go to Khanbaliq in person. Kublai's successor Temür Khan (r.1294-1307), later released all detained envoys and resumed their tributary relationship initially established after the first invasion, which continued to the end of the Yuan.[19] Champa The Champa Kingdom decided to accept the supremacy of the Yuan dynasty and also established a tributary relationship with the Yuan.[19] Afterwards, Champa was never mentioned in the History of Yuan again as a target for the Mongols.[68] In 1305, Cham King Chế Mân (r. 1288 – 1307) married the Vietnamese princess Huyền Trân (daughter of Trần Nhân Tông) as he ceded two provinces Ô and Lý to Đại Việt.[17] What following next was a series of chronic Cham–Vietnamese fighting and major wars over the disputed control of ceded provinces for the rest of the 14th century. Transmission of gunpowder Before the 13th century, gunpowder in Vietnam was used in the form of firecrackers for entertainment.[94] During the Mongol invasions, an influx of Chinese immigrants from the Southern Song fleeing to Southeast Asia brought gunpowder weapons with them, such as fire arrows and fire lances. The Vietnamese and the Cham developed these weapons further in the next century;[95] when the Ming dynasty conquered Đại Việt in 1407, they found that the Vietnamese were skillful in making a type of fire lance that fires an arrow and a number of lead bullets as co-viative projectiles.[96][97] Legacy Despite the military defeats suffered during the campaigns, they are often treated as a success by historians for the Mongols due to the establishment of tributary relations with Đại Việt and Champa.[14][15][16] The initial Mongol goal of placing Đại Việt, a tributary state of the Southern Song dynasty, as their own tributary state was accomplished after the first invasion.[14] However, the Mongols failed to impose their demands of greater tribute and direct darughachi oversight over Đại Việt's internal affairs during their second invasion and their goal of replacing the uncooperative Trần Nhân Tông with Trần Ích Tắc as the King of Đại Việt during the third invasion.[38][77] Nonetheless, friendly relations were established and Dai Viet continued to pay tribute to the Mongol court.[98][99] Vietnamese historiography emphasizes the Vietnamese military victories.[14] The three invasions, and the Battle of Bạch Đằng in particular, are remembered within Vietnam and Vietnamese historiography as prototypical examples of Vietnamese resistance against foreign aggression.[38] Prince Trần Hưng Đạo is greatly remembered as a national hero who secured Vietnamese independence.[88]